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주고등학교 야구부 (문단 편집) == 연혁 == 긴 역사, 부족한 우승, 그런데 [[김원형|프로 100승 투수]], [[최형우|거포 외야수]]와 [[박경완|명 포수]], 심지어 [[조진호(야구)|전직 메이저리거]]들의 모교. ~~[[박현준|흑역사]]까지도 있다~~ 1925년에 야구부가 시작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큰 영향력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, 1960년대 말에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. 그러다가 [[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|군산상고]]의 돌풍과 전국적인 고교야구 붐에 자극을 받았는지 1976년부터 야구부 재건 운동을 시작하여 1977년에 재건에 성공, 전국 무대에 데뷔하기에 이른다. 재건 후, 1978년부터 1981년까지 4년 연속 [[봉황대기]] 8강에 오르면서 저력을 보였다. 해태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공헌했으나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사망한 [[김대현(1962)|김대현]], [[해태 타이거즈]]의 지명을 받았지만 프로에 입단하지 않고 [[한국실업야구]]에 남아 실업야구의 마지막 해였던 2002년까지 뛴 백재우[* 전주고, [[원광대학교 야구부|원광대]]를 거쳐 [[한국전력공사 야구단]]에서 외야수로 활약했다. 오랜 기간 국가대표로도 선발되었으며 선수 말년에는 한전 플레잉코치로 뛰었다.]가 당시 주축 선수였다. 1982년 [[대통령배]] 4강, 1984년 [[황금사자기]] 4강에 이어 마침내 1985년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[[진흥고등학교 야구부|진흥고]]를 누르고, 최초의 창단으로 따지면 60년만에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. 이 때의 주역이 된 선수가 훗날 쌍방울에서 뛴 좌완 [[박성기(야구)|박성기]]다. 그 뒤 [[쌍방울 레이더스]]의 창단 이후, [[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|군산상고]]와 함께 쌍방울의 선수 수급의 주된 팀이 되어 [[김원형]]이나 [[박경완]]의 모교로 명성을 날렸다. 그러나 좋은 이야기는 여기까지고, 사실 객관적으로 볼 때, 1985년 우승 이후 [[전주고등학교 야구부|전주고 야구부]]의 성적은 그야말로 만년 약체였고 타팀에 비해 [[쌍방울 레이더스|쌍방울]]의 연고지 내 고교가 [[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|군산상고]]와 전주고 이렇게 단 2개 학교에 불과해 [[쌍방울 레이더스|쌍방울]]이 전력보강을 하는데 늘 어려움을 겪었다. ||[[파일:최형우 전주고.png]]|| ||[[최형우]] || 그래도 [[신용운]], [[박정권]], [[최형우]]처럼 프로 무대를 수놓는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명맥은 이어갔지만, 2011년에는 선수 부족으로 해체 일보직전까지 몰리는 위기를 맞았다.[* 같은 학교의 농구부는 2006년에 3학년 4인방([[김현호]], [[조효현]], [[김민섭(농구)|김민섭]], [[김현민(농구선수)|김현민]])에 2학년 [[김승원(농구선수)|김승원]]의 베스트5로 출전하는 대회마다 모두 우승을 쓸어담았다.] 다행히 수습이 되면서 야구부의 명맥은 유지하는 중. 다만 기대를 걸었던 [[프로야구 제10구단 관련 논란|10구단 유치 경쟁에서 전주시가 밀려버리고]], 설상가상 연고 구단이 2001년부터 2013년까지 [[KIA 타이거즈]]에서 지역과 전혀 관련이 없는 2014년 부터 [[NC 다이노스]]로 변경된 탓에 미래는 장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.[* 그렇지만 야구단 지원금은 유지가 되기 때문에 구단 운영비에는 큰 변화가 없을듯.] 그래도 [[http://news.joins.com/article/20741907|2016년]]부터 연고구단 [[NC 다이노스]]가 개최하는 다이노스 고교야구 윈터파이널에 참가하는 등 꾸준히 구단의 후원과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. 한 때 20명이 안 되는 인원으로 운영하기도 했지만[* 물론 9명만 유지해도 참가에는 문제가 없다. 다만 그렇게 할시 한명이라도 부상 당하면 그대로 탈락이니...웬만큼 야구부 운영이 개판이라도 10명 이상은 운영되고 있다.] 2010년대 후반은 그런대로 안정을 찾기는 했다. 그래도 과거에 비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. [[최형우]]도 모교 야구부의 하락세가 아쉽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.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44&oid=109&aid=0002068861|최형우, 모교 후배들과 담금질…"초심을 되찾겠다"]] 2010년대 후반까지 계속 침체기를 걷던 전주고는 2019년에 [[서울고등학교 야구부|서울고]]에서 전학한 박재민[* 3학년 좌완투수로 프로팀 지명 가능성이 높았다. 군산중앙초등학교를 다녔으며 연고 중학교인 군산중 및 군산남중으로 진학하지 못하고 [[청원중학교|서울 청원중학교]]로 스카우트 됐다. [[서울고등학교 야구부|서울고]]에서 전주고로의 전학은 사실상 고향 컴백이다.]을 앞세워 중흥을 노렸고 [[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기 전국고교야구대회]]에서 4강에 올랐다. 1985년 황금사자기 우승 이후 34년 만의 메이저 전국대회 4강 진출. 이어진 준결승에서 [[삼성 라이온즈|삼성]]의 1차지명을 받은 [[황동재]]를 무너뜨리면서, [[경북고등학교 야구부|경북고]]에 3-0으로 승리하며 [[배명고등학교 야구부|배명고]]와 결승에서 만나게 됐다. 준결승에서 원투펀치인 탁건과 박재민의 투구수를 적절히 관리하면서 원투펀치 모두 결승전에 등판할수 있게 됐지만, 상대인 [[배명고등학교 야구부|배명고]]도 준결승에서 한계 투구 수를 넘긴 권규헌을 제외한 모든 투수들이 투입 가능하기에[* 청룡기 우승을 차지했던 2017년만 해도 배명고는 총 13명이 등판했고 투수 한 명의 최다 이닝이 36이닝에 불과했다. 2019년 들어서도 12명이 마운드에 올랐다.] 딱히 어느 팀이 유리하다고 보기는 힘들다. 결승에서는 6회까지 팽팽했으나 7회말 수비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5실점을 하며 3-6으로 패했다. 2020년 봉황대기 8강전에 진출하여 전북 지역 또 하나의 라이벌인 [[인상고등학교 야구부]]와 대결했으나 4-11 7회 콜드게임패를 당했다. 2021년 3월 제8회 전국 명문고 야구열전에서 난적 [[덕수고등학교 야구부|덕수고]]를 준결승에서 꺾고 결승전에서 [[경북고등학교 야구부|경북고등학교]]를 상대했으나 0-5으로 패했다. 2022년 8월 대통령배 4강에 진출했고, 4강에서는 [[대구고등학교 야구부|대구고등학교]]를 꺾고 창단 처음으로 대통령배 결승에 진출해 [[대전고등학교 야구부|대전고등학교]]와 겨루게 됐다. 다만 주축 투수인 박권후(3학년, 우완)와 손현기(2학년, 좌완)가 투구수 제한에 걸려 결승전에 나오지 못하는 것이 변수.[* 박권후는 [[공주고등학교 야구부|공주고]]와의 16강전에서 5 2/3이닝동안 104구를 던졌고, [[장충고등학교 야구부|장충고]]와의 8강전에서 6과 2/3이닝 동안 103투구 7피안타 2사구 6탈삼진 2실점(1자책점)을 기록했다. 손현기는 [[대구고등학교 야구부|대구고]]와의 준결승전에서 5이닝동안 92개의 공을 던지며 9개의 삼진을 기록했다.] 정제헌(3학년), 홍주환(2학년), 이호민(1학년)으로 결승전 마운드를 운용할 계획이다.[[https://www.spotvnews.co.kr/news/articleView.html?idxno=542966|결승전 진출 관련기사]][[http://mksports.co.kr/view/2022/718827/|김원형 인터뷰]] 그 결과 7:4로 [[대전고등학교 야구부|대전고]]가 승리를 거두며, 전주고는 [[대전고등학교 야구부|대전고]]가 28년만의 대통령배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. 2022년 봉황대기 2회전에서 대통령배 우승팀인 [[대전고등학교 야구부|대전고]]와 맞붙었는데 14:1 7회 콜드게임으로 [[대전고등학교 야구부|대전고]]를 대파하면서 대통령배 결승에서 패한 것을 완벽하게 복수했다. 2023년 신세계이마트배에선 32강전에서 세광고한테 패하며 탈락했다. 2023년 황금사자기에선 32강전에서 충암고한테 0:14 6회 콜드패를 당하며 탈락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